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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동씨의 공부법 _천재비법

조아0415 2018. 12. 28. 00:07

양주동씨의 공부법


양주동씨는 조선 최고의 천재이며 자칭 국보 1호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허풍이지만 양주동씨에게는 사실이었습니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지요.

뒷 줄 가운데 사람이 양주동입니다.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학교 영어교수로 근무합니다.

후에는 국문학자로서 향가 연구의 최고의 권위자가 되기도 합니다.

현재 국어 및 문학 교과서에 실린 향가 해독은 대부분 양주동의 해석입니다.

더구나 한문도 잘하던 사람입니다.

국보 1호라는 말이 전혀 허풍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조금 나르시시스트인 것도 사실입니다.

6.25 피난 때 임시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어느 대목에서 막혀버립니다.

그 장면에서 학생들이 오히려 긴장을 했다고 합니다.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국보1호인 사람이 창피를 당하는 순간이니까요.

그런데 양주동씨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느그들도 몰라도 돼."

양주동씨도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는 아닙니다.

다만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이 강했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수필 '면학의 서'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문법을 독학하다가 ‘3인칭’이란 단어가 막히자 30리를 걸어 읍내 선생님을 찾아가 설명을 듣고는 희열에 들떠 “내가 1인칭, 너는 2인칭, 그 외엔 우수마발(牛수馬勃)이 다 3인칭이니라”고 외치고 다녔다.

논어에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고 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한 법이지요.

양주동씨는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천재의 첫 번째 비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박사가 아닌 명예박사입니다.

여기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데 다른 교수들이 논문만 써오면 박사학위를 주겠다고 하자, '느그들이 감히 내 논문을 심사하겠다는 거냐'라면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

양주동을 능가하는 천재가 있었습니다.

오대산에서 탄허 스님에게 장자 강의를 듣고는 10살이나 연하인 탄허 스님에게 오체투지로 절을 합니다.

다시 동국대로 돌아와 강의를 할 때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도 탄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입니다.

아무리 아랫사람이라도 자신보다 뛰어나다면 그 밑에서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천재의 두 번째 비법입니다.

이때의 인연인지 그가 작사한 어버이 은혜는 불교의 영향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습니다.

세 번째 비법은 '유쾌함'입니다.

양주동씨는 자신의 이름을 다음처럼 얘기했습니다.

내 이름이 양주동이니 양주 (洋酒) 동이,

입이 걸어 양 (兩) 주둥이오"

참으로 유쾌한 사람이지요.

천재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유쾌하게 누구에게나 물어보면 됩니다.

뱀발

양주동씨는 답안지를 쌓아놓고 그 앞에 선풍기를 틀어놓아 더 많이 날아갈수록 점수를 깎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유는 잉크가 많이 묻은 종이가 덜 날아가기 때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