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70130115402796
회사-집-회사-집, 그녀의 죽음이 남일 같지 않다
이혜선 입력 2017.01.30 11:54 댓글 29개
[오마이뉴스 글:이혜선, 편집:박정훈]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일요일 보건복지부 여성 공무원 A씨가 과로사한 것이 알려졌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 A씨는 육아휴직
복귀 후 7일 연속 근무를 했으며, 평일 내내 야근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많은 시민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표하는
동시에 '육아 및 노동 환경'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워킹맘이 실제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그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전달하기 위하여, 릴레이로 '워킹맘 시민기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얼마 전 세 아이의 엄마이자 공무원이 주말 근무 중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
주 7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그분의 죽음이 충격적인 이유는 세 아이를 두고 주말에까지 나와서 일을 해야 했던
그 일상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워킹맘 근로시간 단축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은 워킹맘만의 근로 환경이
아니다.
아빠의 얼굴은 여전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쁜데 엄마 혼자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림을
그려보라. 아이를 낳을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 미생에서 워킹맘으로 등장하는 선 차장(신은정) |
ⓒ tvn |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알림장과 준비물을 챙기고, 아이들 등원을 돕는다.
혹, 아이들이 아프면 투약보고서를 챙기는 것도 남편 몫이다. 그리고 남편이 늦은 출근을 한다.
남편이 자영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신 출근이 늦는 남편은 퇴근이 늦다.
오후엔 어머님이 아이들 하원시켜서 저녁밥을 먹이고, 내가 퇴근하는 9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신다.
나는 9시까지 집으로 가기 위해 7시에 사무실을 나선다. 다시 출근할 때의 경로로 퇴근을 해서 9시에 도착을 하면
어머님과 바톤터치. 그때부터는 또 다른 To-Do List로 바쁘다.
아이들을 씻기고, 나도 씻고, 소소한 집안 정리를 좀 하다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잠자리에 든다.
평일에 가족끼리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바쁠 때는 남편과 며칠씩 얼굴을 보지 못한 적도 있다.
부부간의 대화와 일상은 페북과 카톡으로 공유하는 것이 더 많다.
▲ MBC <다큐스페셜>, 2시간째 출근중-길 위의 미생편 갈무리 화면 |
ⓒ MBC <다큐스페셜> |
하지만,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은 많이 힘들었다. 지금이야 몸에 배어서 좀 괜찮지만, 처음엔 체력저하로 몸살도
자주 앓고 입술도 부르트고, 회사에 가서는 블랙커피를 더블샷으로 마셔야 정신이 차려지곤 했다.
대신 아이들 양육에서는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많이 편해졌다. 갑작스러운 야근에도 대응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밝고, 명랑하게 자라고 있다. 하지만, 저녁이 없는 삶은 여전히 아쉽다.
▲ 워킹맘과 일에 대한 자부심 |
ⓒ pixabay |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충전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미혼일 때는 격무에 시달리더라도 집에 와서 푹 자거나 주말에 늦잠을 잘 수도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었다.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었고, 조그만 취미생활도 영위하면서 회사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곤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개인의 시간을 갖는 것은 사치였다.
회사일에서 집안일, 집안일에서 회사일, 일에서 일 사이를 오갈 뿐, 나를 위한 충전의 시간은 없었다.
가정이 생기고 나서 우리는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부여 받는다.
아빠 혹은 엄마, 남편 혹은 아내로서 해야 할 의무들 앞에 서게 된다.
그 의무의 한켠에 가족에게 받는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 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가족들과 나누어야 하는 소중한 충전의 시간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한다.
때문에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시간'이 워킹맘들에게는 절실하다.
▲ SBS스페셜 <엄마의 전쟁> 2부의 한 장면 |
ⓒ SBS 영상 캡처 |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다는 속담이 있지만, 회사와 가정은 두 마리 토끼가 아니다.
가정이 온전히 평화로울 때 회사 일의 능률도 더 오르는 법이다.
대선주자들의 워킹맘 근로시간 단축 정책안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대책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
자체는 반갑다. 문화라는 것이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전의 워킹맘보다 요즘이 낫고,
내 다음 세대에는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SBS다큐 <엄마의 전쟁>에서 네덜란드 워킹맘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꿈만 같은 일이고,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만 할까? 저녁이 있는 삶, 저녁에 아이들과 마주 앉아
저녁을 같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가족들과 마주 앉아서 오늘 어떤 일이 좋았고,
어떤 일이 속상했는지를 나누고 위로받는다면... 다음날의 출근길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 <이틀, 두가지 삶아 담아내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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