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10일정도 남았다.
이번 겨울방학은 유난히 짧은 거 같다. 실제로 방학날짜를 따져보니 40일도 안된다. 방학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당장 3월부터 고등학교를 가야한다니 내 마음이 자꾸 분주해서 방학이 후딱 지나가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목요일(25일)부터 토요일까지 교회에서 청소년수련회를 다녀오고 나면, 1주일 후엔 개학이다. 개학하고도 한 열흘 등교하면 졸업이란다. 아흐~ 나의 중학생시절도 20여일 지나면 끝난다. 해놓은 것도 없는데 나이만 자꾸 많아진다. 초조하고 아쉽고 불안하고....
그래서이지 싶다. 난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관한 얘기가 자주 튀어나오고부터 가만히 있다가도 불쑥불쑥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을에 교육청에서 특수교육대상자 심사를 받으면서 내가 진학할 고등학교가 정식으로 거론되고, 급기야 엄마는 나를 고등학교 구경시켜준다며 데리고 갔다. 막연히 생각만 하던 문제를 실제로 딱 마주치고 보니 더럭 겁이 났다. 유치원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렇게 여러 번 겪었던 일이건만 나에게 새 출발은 늘 버겁고 겁이 난다. 다른 친구들도 내 마음 같을까? 물어보고 싶다.
지난 11월쯤부터 불안하고 뭔가 종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순간순간 엄습해온다. 지금도 그 증세는 멈추질 않는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교실이 정해질 때까지는 내 마음이 계속 이런 상태일 것 같다. 나도 괴롭지만, 엄마도 아빠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실 것 같아 미안하기는 한데 나도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초겨울부터는 무력감이 밀려와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잤다. 입맛도 없고 배도 안 고팠다. 밤이 되어도 잠이 안와서 멀뚱멀뚱 밤을 꼴깍 새는 날이 많아지자 엄마는 나를 단골 한의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선생님은 진맥을 짚어보시고, 또 엄마한테 내 상태를 들으시고는 뜬금없이 “호민아, 너 여자친구한테 실연 당했니?”하셨다. 내 몸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셨다.
한의사선생님은 나를 어릴 때부터 보셔서 내가 놀라거나 체하거나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을 금방 알아내시는 분인데, 이번에는 다르다고 하셨다. 매사에 의욕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따라서 별 다른 처방은 없고, 신나는 일들을 만들어주라고 하셨다. 엄마는 괜찮다는데도 굳이 침을 맞히고 약간의 한약을 받고서야 한의원을 나왔다.
그러게 내가 진작부터 기차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건만 방학하면 기차 태워준다고 미루더니.... 언제부터 학교 가는 걸 그렇게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루쯤 학교 제끼고 기차 태워줬으면 이 지경까지는 안됐을 걸. 우리엄마는 아직도 나를 너무 모른다!
한 보름 넘게 안 먹고 안자고 하다보니, 얼굴 살이 쏙 빠져서 보는 사람마다 자꾸 캐묻는 게 귀찮아서 밥도 먹고 잠도 자기로 했다. 그 대신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표현하느라 하찮은 말 한마디에도 버럭 화를 내고, 심하면 발을 쿵쿵 구르거나 겅중겅중 제자리 뛰기를 한다. 내가 지금 화가 많이 났으니, 모두들 조심하라고 행동으로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이런 나의 모습을 그냥 지켜보시기만 한다. 내가 고등학교 가야하는 것 때문에 예민하다는 걸 아시는 것 같다. 그리고 아직 사춘기가 진행 중이라는 것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리라.
가끔 엄마가 부드럽게 타이르신다. “호민, 그러다 진짜로 화 잘 내는 성격으로 변하면 아무도 너 안 좋아할 걸. 다른 사람들이 너 싫어하면 안 좋잖아 그치? 그러니까 화나도 좀 참아보는 훈련도 필요해. 호민이는 지금도 멋있지만 어른이 되서도 계속 멋있는 사람이고 싶지?”
아~ 어른이 되는 거, 그것도 멋있는 어른이 되는 거 진짜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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