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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19세 청년은 왜 굶어죽었나

조아0415 2016. 9. 11. 13:39
[정동식의 유럽 리포트]19세 청년은 왜 굶어죽었나
http://v.media.daum.net/v/20160911095947666

출처 :  [미디어다음] 국제일반 
글쓴이 : 경향신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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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요르디 브루일라드(19)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달 27일이었다. 벨기에 헨트에 있는 한 휴양공원에서다. 산책을 나왔던 주민의 개가 숲속에 있던 텐트 안에서 우연히 그를 찾아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자연사. 무더위 속에서 물과 음식을 먹지 못해 이틀 전에 굶어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벨기에는 충격에 빠졌다. 국민소득이 세계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나라에서 팔팔한 청년이 굶어죽었다는 점, 그것도 아무도 돌보는 사람없이 혼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두 명의 청소년단체 종사자는 공개 서한을 올렸다. 청소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요스트 본터는 “궁핍과 외로움 속에서 살고있는 낙오자들이 여전히 많지만 우리는 적정하게 지원하기보다는 잘라내기에 급급했다”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거리선도원인 한스 보딘은 “혹자는 네 의지에 따라 선택했기 때문에 너의 책임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공평하지 않다”면서 “네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우리는 너를 좀더 적극적으로 끌어안았어야 했다”고 반성했다.

벨기에 헨트의 공원에서 ‘고독사’한 청년 요르디 브루일라드. |브루일라드 페이스북
벨기에 헨트의 공원에서 ‘고독사’한 청년 요르디 브루일라드. |브루일라드 페이스북
8일 열린 브루일라드의 장례식 뒤 사진 옆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 페이스북 브루일라드 추모 페이지
8일 열린 브루일라드의 장례식 뒤 사진 옆에 꽃다발이 놓여 있다. | 페이스북 브루일라드 추모 페이지

직업군인인 예프 베르벡은 장례라도 제대로 치러주자며 소셜미디어로 모금에 나섰다. 그는 “19세 청년이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쓸쓸히 죽었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함께 살았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작별인사나 나누고 떠나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다. 순식간에 270여명이 장례 비용의 두배에 달하는 1만달러를 기부했다. 이미 화장된 브루일라드는 지난 8일 헨트 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장례식을 가졌다.

브루일라드는 부모가 일찍 이혼하는 바람에 어린 시절을 청소년보호시설에서 보냈다. 이혼 후 어머니는 교류가 끊어졌으며, 재혼한 아버지는 또다른 자녀를 3명이나 두어 브루일라드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브루일라드는 보호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행복해 했다고 친구들은 전했다. 직업교육도 받았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렸다.

문제는 18살이 되면서 생겼다. 벨기에는 법적으로 만 18세부터 성인이다. 당사자가 원하면 보호시설에 계속 머물 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독립을 택한다. 브루일라드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서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취업은 안 되고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법적으로만 성인일 뿐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브루일라드가 숨진 채 발견된 헨트의 휴양공원. |헨트 시 홈페이지
브루일라드가 숨진 채 발견된 헨트의 휴양공원. |헨트 시 홈페이지

브루일라드가 범죄를 저질렀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거나, 약물을 복용했더라면 별도의 대책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잘한 사고와 문제를 일으켰지만 이 분류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처럼 무방비 상태로 사회로 나오는 ‘초보 어른’들이 매년 1000명에 이르며, 노숙자시설에 위탁 중인 사람 3분의 1 가량이 청소년 보호시설 출신이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사회보호망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브루일라드 사건은 고독사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그리고 계층 간극이 벌어질수록 소외로 내몰리는 사람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청소년보호시설에 있다가 독립한 23세의 한 여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보호시설 청소년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다시는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과 매일매일 마주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했을 때 요리 등 내 스스로를 돌볼 준비는 돼 있었지만 외로움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이 공동체 밖으로 내몰리면 그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브루일라드처럼 비참하게 도태되거나, 사회를 위협할 내부의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복지도 잘 돼 있고 경쟁도 덜한 벨기에서 발생한 한 청년의 고독사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브뤼셀 | 정동식 통신원(전 경향신문 기자) dosjeong@gmail.com>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