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다람쥐
사람의 마음이 가장 고요해질 때는 역시 자연과 마주할 때입니다. 산, 바다, 강, 들과 같은 자연 속에 놓였을 때 참 행복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가장 많습니다. 소나무는 일 년 내내 푸른빛을 내뿜는 상록수(常綠樹)로 우리 눈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습니다. 소나무가 산에 많은 이유는 식목일(植木日)이면 누군가가 몇 그루씩 산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종종 학생들이 단체로 동원돼 산에서 소나무에 붙어있는 징그러운 송충이를 젓가락으로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듯 소나무를 많이 심고 송충이를 잡는 등 관리를 잘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산에 소나무가 가장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도토리나무 또는 상수리나무라고 불리는 참나무는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모든 산에 풍부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무도 심지 않은 참나무가 왜 그렇게 산에 많을까요?
참나무는 가을에 도토리를 많이 열리게 해 우리에게 ‘묵’이라는 자연적인 먹거리를 공급합니다, ‘묵’은 탄닌산(Tannic acid) 이 풍부해서 인체 내에 축적된 중금속을 해독하기 때문에 건강식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또한 참나무는 참숯을 만드는 재료가 되며, 표고버섯 등을 생산하는 데도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참나무는 흉년이 들 때는 도토리 열매를 많이 맺어 모든 동물의 먹이로 충분히 공급하고, 풍년일 때는 도토리 열매를 적게 생산하는 것으로 자연의 순기능(順機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을 참나무에는 도토리가 무성하게 열리는데, 이 도토리는 바로 다람쥐의 먹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다람쥐는 가을 동안 열린 도토리들을 열심히 따서 겨울 동안 먹을 양식으로 저장합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열심히 오가면서 많이 딴 도토리를 다른 다람쥐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장소에 숨겨놓습니다. 그런데 다람쥐는 머리가 총명하지 못해 자신이 숨겨놓은 도토리 저장고를 다 찾지 못합니다. 낙엽 밑에 숨겨진 도토리 중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에서 싹이 나 참나무로 자랍니다. 이 때문에 깊은 산에도 참나무가 많은 것입니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사는 다람쥐가 모두 똑똑한 다람쥐였다면 우리나라 산에는 참나무가 없었을 것입니다. 똑똑한 다람쥐가 이곳저곳에 자기가 숨겨놓은 모든 도토리를 찾아서 먹거리로 했다면 산에는 참나무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똑똑한 다람쥐라면 다른 다람쥐들이 숨기는 곳을 곁눈으로 보고 알아두었다가 모두 찾아 먹어버려 산에는 참나무가 한그루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일부러 심지 않는 한 말입니다.
참나무가 없어진 산을 상상해 봅시다! 푸르고 풍요로운 산이 아니라 메마르고 황폐한 산의 모습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산의 풍경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다람쥐가 똑똑한 다람쥐라면 전 세계의 모든 산은 참나무가 사라진 황폐한 산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최고가 존재할 이유도 있지만, 꼴찌가 존재할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꼴찌 다람쥐가 존재했기에 산이 푸르고 풍요로웠듯이, 꼴찌 사람도 존재하기에 세상이 풍요롭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똑똑한 최고의 사람들만 있다면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꼴찌 다람쥐가 겨울 양식으로 사용할 도토리를 잔뜩 따서는 양쪽 볼에 터질 듯이 우겨넣은 모습은 욕심이 가득 찬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양쪽이 터질 듯이 따서 숨겨놓은 도토리를 모두 다 찾아 먹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꼴찌 다람쥐가 온 힘을 다해 도토리를 딴 후 열심히 이곳저곳에 숨기는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찾아 먹지도 못할 도토리를 대충 낙엽 위에 뿌려놓는다면, 흙과 접촉하지 못한 도토리는 모두 부패하게 됩니다. 짧은 앞발을 가진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길 때, 낙엽 아래 가장 깊숙한 바닥에 숨기는 최선의 노력이 없었다면 도토리가 제대로 싹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꼴찌 다람쥐도 온 힘을 다해 낙엽 깊이 숨겼기에 흙과 접촉한 도토리가 싹이 트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꼴찌 다람쥐가 부지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하지도 않고, 그냥 도토리 몇 개만 따서 이곳저곳에 깊이 숨기지도 않은 채 낙엽 위에 흩어놓았다면 참나무는 자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모두가 다 최고 다람쥐가 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꼴찌도 최고(最高)가 되고자 하고, 중간도 최고가 되고자 하고, 최고는 당연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에서 인간의 불행(不幸)은 시작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이 꼴찌인지, 중간인지, 최고인지도 모르고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면서 정신적인 압박감(壓迫感)에 시달려왔고, 육체적으로 무리하게 된 것이 만병의 근원이 셈입니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밤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풍요로움을 가졌지만, 그 대가는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으면 부담이 되는 모든 것들을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늘 최고, 중간, 꼴찌가 각각 존재(存在)해야 할 이유가 있으며, 최고는 최고대로, 중간은 중간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최선(最善)을 다하는 모습이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꼴찌가 최선을 다해 꼴찌가 되었을 때, 박수와 갈채를 보내면서 꼴찌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세상이 인간이 살아야 할 진짜 세상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아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박수와 갈채와 격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육체적이 허약함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왜 내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지만, 해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해되지도 않고 해답도 모르지만 아픔과 약함 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찾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꼴찌 다람쥐 때문에 산이 푸르고 풍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치열하게 무리하면서 자리를 지키는 ‘일등’보다는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꼴찌’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참나무는 가을에 도토리를 많이 열리게 해 우리에게 ‘묵’이라는 자연적인 먹거리를 공급합니다, ‘묵’은 탄닌산(Tannic acid) 이 풍부해서 인체 내에 축적된 중금속을 해독하기 때문에 건강식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또한 참나무는 참숯을 만드는 재료가 되며, 표고버섯 등을 생산하는 데도 필수적입니다. 아울러 참나무는 흉년이 들 때는 도토리 열매를 많이 맺어 모든 동물의 먹이로 충분히 공급하고, 풍년일 때는 도토리 열매를 적게 생산하는 것으로 자연의 순기능(順機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을 참나무에는 도토리가 무성하게 열리는데, 이 도토리는 바로 다람쥐의 먹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다람쥐는 가을 동안 열린 도토리들을 열심히 따서 겨울 동안 먹을 양식으로 저장합니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열심히 오가면서 많이 딴 도토리를 다른 다람쥐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장소에 숨겨놓습니다. 그런데 다람쥐는 머리가 총명하지 못해 자신이 숨겨놓은 도토리 저장고를 다 찾지 못합니다. 낙엽 밑에 숨겨진 도토리 중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에서 싹이 나 참나무로 자랍니다. 이 때문에 깊은 산에도 참나무가 많은 것입니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사는 다람쥐가 모두 똑똑한 다람쥐였다면 우리나라 산에는 참나무가 없었을 것입니다. 똑똑한 다람쥐가 이곳저곳에 자기가 숨겨놓은 모든 도토리를 찾아서 먹거리로 했다면 산에는 참나무가 자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똑똑한 다람쥐라면 다른 다람쥐들이 숨기는 곳을 곁눈으로 보고 알아두었다가 모두 찾아 먹어버려 산에는 참나무가 한그루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일부러 심지 않는 한 말입니다.
참나무가 없어진 산을 상상해 봅시다! 푸르고 풍요로운 산이 아니라 메마르고 황폐한 산의 모습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산의 풍경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다람쥐가 똑똑한 다람쥐라면 전 세계의 모든 산은 참나무가 사라진 황폐한 산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최고가 존재할 이유도 있지만, 꼴찌가 존재할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꼴찌 다람쥐가 존재했기에 산이 푸르고 풍요로웠듯이, 꼴찌 사람도 존재하기에 세상이 풍요롭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똑똑한 최고의 사람들만 있다면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꼴찌 다람쥐가 겨울 양식으로 사용할 도토리를 잔뜩 따서는 양쪽 볼에 터질 듯이 우겨넣은 모습은 욕심이 가득 찬 우리의 자화상(自畵像)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양쪽이 터질 듯이 따서 숨겨놓은 도토리를 모두 다 찾아 먹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꼴찌 다람쥐가 온 힘을 다해 도토리를 딴 후 열심히 이곳저곳에 숨기는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찾아 먹지도 못할 도토리를 대충 낙엽 위에 뿌려놓는다면, 흙과 접촉하지 못한 도토리는 모두 부패하게 됩니다. 짧은 앞발을 가진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길 때, 낙엽 아래 가장 깊숙한 바닥에 숨기는 최선의 노력이 없었다면 도토리가 제대로 싹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꼴찌 다람쥐도 온 힘을 다해 낙엽 깊이 숨겼기에 흙과 접촉한 도토리가 싹이 트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꼴찌 다람쥐가 부지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하지도 않고, 그냥 도토리 몇 개만 따서 이곳저곳에 깊이 숨기지도 않은 채 낙엽 위에 흩어놓았다면 참나무는 자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모두가 다 최고 다람쥐가 되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꼴찌도 최고(最高)가 되고자 하고, 중간도 최고가 되고자 하고, 최고는 당연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에서 인간의 불행(不幸)은 시작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이 꼴찌인지, 중간인지, 최고인지도 모르고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면서 정신적인 압박감(壓迫感)에 시달려왔고, 육체적으로 무리하게 된 것이 만병의 근원이 셈입니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밤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풍요로움을 가졌지만, 그 대가는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으면 부담이 되는 모든 것들을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을 해 원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늘 최고, 중간, 꼴찌가 각각 존재(存在)해야 할 이유가 있으며, 최고는 최고대로, 중간은 중간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최선(最善)을 다하는 모습이 세상을 세상답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꼴찌가 최선을 다해 꼴찌가 되었을 때, 박수와 갈채를 보내면서 꼴찌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세상이 인간이 살아야 할 진짜 세상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아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박수와 갈채와 격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육체적이 허약함으로 고통을 받는 경우도 “왜 내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지만, 해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해되지도 않고 해답도 모르지만 아픔과 약함 속에서 자기 존재감을 찾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꼴찌 다람쥐 때문에 산이 푸르고 풍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치열하게 무리하면서 자리를 지키는 ‘일등’보다는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꼴찌’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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