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자마자 닥친 생활고, 50·60 가족까지 파괴된다
이승호 입력 2019.04.04. 01:01 수정 2019.04.04. 09:29
이혼·별거에 사회관계도 단절
추락하는 중산층 <중>
노모(62)씨는 지난 20여 년의 세월에 회한(悔恨)이 많았다. 노씨는 지난달 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하던 중이었다. 그는 혼자라고 했다. 왜 그리됐을까. 첫 직장이 군 부사관, 다음이 서울시 공무원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이었다.
그런데 1998년 공직을 그만두면서 인생에 어려움이 드리워졌다. 2년간은 특별한 직업 없이 지냈다. 2000년 트럭을 사 용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침 6시에 나와 자정에 귀가했다. 일요일만 쉬고 월 25일 일했다. 그래도 매출은 하루 10만원, 한 달 250만원에 그쳤다. 기름값 등을 빼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공무원 때 월급 300만원을 벌 길이 없었다. 일 마치고 술로 지새우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아내와 멀어진 것도 이때쯤이다. 노씨의 퇴직 직후 가계를 책임진 건 아내였다. 재봉 기술을 활용해 옷감을 제작했다. 노씨가 일을 시작해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자 부부간 대화가 더 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언성만 높였다. 2003년 크게 다툰 후 아내가 딸(당시 10세)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중앙일보가 지난달 심층 인터뷰한 ‘추락한 5060 중산층’ 24명은 가장 큰 어려움의 하나로 ‘관계 단절’을 토로했다. 퇴직이나 실직, 사업 실패 후 어려워지자 가족과 헤어지고, 종전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점점 고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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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 비교돼 동기 모임 안 나가"
“동기들은 다 잘 됐더라고요. 나도 공무원 녹을 계속 먹었으면 인생이 평탄했을 텐데….”
노씨는 우연히 군 동기와 연락이 닿아 2017년 송년 모임에 나갔다. 동료들의 상황은 노씨와 달랐다. 상당수가 원사·준위로 전역했고 장교 시험을 봐 여단장(대령)까지 된 사람도 있었다. 모두 연금을 받고 있다. 일부는 군에서 딴 자격증으로 지금도 직장생활을 한다. 노씨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꼈다. 지난 2월 말 5년 가까이 일한 빌딩 경비직(월급 200만원)에서 해고돼 실업급여를 신청한 상태다. 노씨는 “동기들과 처지가 비교돼 모임에 나가지 않고 피하게 됐다”고 말한다.
생활비가 쪼들리면 예전의 취미생활은 엄두를 못 낸다. 택시기사 홍모(62)씨는 계단 걷기가 현재 유일한 취미다. 30년 활동한 야구 동호회는 나갈 생각을 못 한다. “직장을 그만두니 돈이 들어가는 취미생활은 엄두가 나지 않더라”며 “이 나이에 돈 쓰지 않고 건강을 챙길 방법은 계단 걷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직 은행원 서종남(58)씨도 “회사 다닐 땐 영화·연극·콘서트를 틈만 나면 봤지만 이젠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게 문화생활의 전부”라고 말했다.
김근홍(전 한국노년학회장)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5060세대는 급작스러운 사회변화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후를 맞은 낀 세대”라며 “관계 단절은 우울증이나 치매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 5060세대의 삶은 결국 현재 2030세대 노후생활의 바로미터”라며 “노년 중산층을 지원해 국가가 내 미래를 최소한은 보장해 준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젊은 세대의 사회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김태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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