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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남 고성]? 고성이씨(固城李氏)? 시조 단소와 재실 금봉재(金鳳齋)

조아0415 2016. 4. 24. 18:12

고성이씨(固城李氏)

 

고성(固城)은 경상남도 중남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변한시대에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또는 고사포국(古史浦國)이었다. 737년(신라 효성왕 1)에 신라에 흡수되어 고자군(古自郡)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고성군(固城郡)으로 바뀌었다.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고주(固州)로 확장되었고 후에 철성부(鐵城府)로 승격되었다가, 1018년(현종 9) 고성현으로 강등되었다. 1266년(세조 3) 지주사(知州事)로 승격되었으며, 공민왕 때 현령을 파견한 후 지속되었다. 1604년(선조 37) 거제현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이 거제현 두룡포(지금 統營)로 이전하였다가 두룡포가 1617년(광해군 9) 고성현으로 이관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고성군이 되었다.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용남군의 동해면이 편입되었다. 1938년 고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고성이씨 시조는 이황(李璜)이다.《이씨추원록(李氏追遠錄)》에 의하면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이었던 이반(李槃)이 군사를 이끌고 우리나라에 온 뒤 눌러 살게 되었는데 이황은 그 후손으로 24세손이라고 하였다.그는 고려시대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만성보(萬姓譜)》등에는 고려 덕종 때 문과(文科)에 올라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거란군(契丹軍)의 침입 때 공을 세워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며, 철령군(鐵嶺君: 고성(固城)의 별호)에 봉해져 후손들이 관향(貫鄕)으로 삼았다고 한다.

 

 

 

재실 금봉재 전경

 

 

 

 

 

 

 

 

고려문하시중철성부원군이공사적비

 

 

 

 

 

9세(휘 嵒-철성군 李瑀의 장자)단소-문정공행촌이선생지단

9세(휘 嶠-철성군 李瑀의 차자)단소-문열공도촌이선생지단

 10세(휘 琳-문열공의 子) 단소-문하시중철성부원군이공휘림(琳)지단

시조~5세 단소 전경

 

철성이씨 세단지비 

 

 

 

 

철성이씨오세지단

시조(휘 璜) 단소-고려철령군철성이공지단

 

2세(휘 田枝)단소-고려태자첨사철성이공지단

 

3세(휘 國軒)단소-고려병부상서시경안철성이공지단

 

4세(휘 永年)단소-고려병부상서철성이공지단

 

5세(휘 麟沖)단소-고려병부상서철성이공지단

 

5세(휘 嚴沖)단소-고려문하좌시중철성이공지단

 

 

 

묘소에서 바라본 시조~5세단소 전경

6세 이진(李瑨)공및 8세 이우(李瑀)공 묘소 전경

 

 

 

 

려조급제이공진(瑨)지묘/려조좌시중철성군이공우(瑀)지묘/비함양군군부인박씨지묘

출처 : 癡叔堂
글쓴이 : cheesookda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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