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긍휼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싶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어느 시골에서 농부가 급히 삽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삽을 보니 자루를 쓸 수가 없어서 아들에게 옆집에 삽 좀 빌려 오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왔습니다.
“옆집에서 삽을 빌려 줄 수 없답니다.”
“아니? 뭐? 왜?”
거절당한 겁니다.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며칠 후에, 그 옆집 아들이 삽을 빌리러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빌려 주라고 말합니다. 아들이 항의합니다.
“지난번에 삽을 빌려 주지 않았잖아요.”
“그렇다. 첫 째, 삽을 빌려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빌려 주지 않으면 그건 복수하는 일이다. 둘 째, 빌려주면서 원망하고 툴툴거리면 그건 증오하는 일이다. 셋 째,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빌리러 왔으니 빌려 주면, 그게 긍휼이다.”
긍휼은 위에서 아래 사람에게 쏟아 붓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긍휼이고, 우리가 받은 사랑이 긍휼입니다.
긍휼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긍휼을 베푼 사람은 심판을 이긴다니, 긍휼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를 확인할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건 가히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리를 죄인과 동일하게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들어가다니요.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 모인 자들이 세리들입니다.
주님은 그들과 함께 앉아서 식사도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느냐?”
그걸 아시고 주님이 설명합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복수심이나 증오심은 싸워야할 대상입니다.
그냥 놔두면 독이 되고 불행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싸워야할 대상입니다. 다시 생기고 다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긍휼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다만 긍휼은 그 뜻을 배워서 우리 것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사랑입니다.
긍휼을 원하시고 제사를 윈치 아니하신다는 그 뜻을 보고 배우고 배워서 긍휼의 옷을 입는 것,
그래야 심판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태의 집에 들어가신 주님을 보면서 배워야할 긍휼의 뜻 3가지를 살핍니다.
첫 째, 긍휼이란 상대방의 약점을 덮어 주는 일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부족함을 덮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마태의 약함도 덮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서로 서로 약함을 덮어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까요? 덮어줘야 힘을 냅니다. 덮어줘야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덮어주는 사랑을 배우는 일, 그것이 긍휼을 배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붙들고 받은 사랑이 바로 그런 사랑이니까요.
둘 째, 긍휼이란 참고 기다려 주는 일입니다.
탕자가 집을 나간 이후에 아버지는 늘 탕자를 기다립니다. 기다릴 가치도 없을 것 같은데 기다리십니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 주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흔들리기 잘하고 넘어지기 잘하는 우리를 참고 기다려 주시는 사랑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받은 긍휼, 그러니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 참고 기다려 줘야지요.
셋 째, 긍휼이란 그 사람과 같아지는 일입니다.
주님은 죄인의 자리까지 내려 오셨습니다. 아예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롬12:14-15)
이건 배워야 가능한 일입니다. 긍휼의 뜻을 깨닫고 배워야 긍휼을 옷 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신다는 그 뜻을 깨닫고 그 긍휼을 배워 갈 것입니다.
긍휼만이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긍휼' 이라는 히브리어 ' 라함 '은 ' 여성의 태' , ' 자궁' 이라는 뜻이다.
' 자궁 ' 은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기관으로서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습을 잘 대변한다.
따라서 긍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시며,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는 속성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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