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아스텍 문화는 우리민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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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콜롬버스가 인디언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별로 배우지 않았다. 그는 아주 잔인하고 황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섬주민들에게는 강제로 황금을 채굴해오라고 하고 책임량을 가져오지 않으면 손목을 잘랐다. 반항하면 코를 자르고 귀를 잘랐으며 개가 달라 들어 물어뜯었다. 기록에 따르면 약탈, 강간, 고문, 살인이 흔하게 이루어졌다. 요구한 금을 캐오지 못한 인디언들의 손목을 자르는 스페인군인들(드 브리, 1504년 목판화) Christopher_Columbus'_Soldiers_Chop_the_Hands_off_of_Arawak_Indians who_Failed_to_Meet_the_Mining_Quota 바르톨로메 데 라스 까사스 신부는 1513년 스페인군의 쿠바점령에 종군하며 “이제껏 보지 못한 가장 잔인한 학살이었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그는 <서인도제도의 역사>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썼다. “스페인인들은 사람을 두동강 낼 수 있느냐? 목을 자를 수 있느냐? 창자를 끄집어 낼 수 있느냐? 내기를 걸기도 했다. 엄마의 젖을 먹고 있는 애기를 발로 차고 찢어발기고 머리를 바위에 쳐박았다. 부녀자를 능욕하고 죽이기도 했다.... 심지어 장작불속에 던져 넣어서 살아 있는 인디언을 태워 죽였다. 나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의 두 눈으로 그 증거를 확인했다.” 인디언을 학살하는 스페인 군인들(드 브리, 1504년 목판화) 스페인사람들에게 인디언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같은 동물이었을 뿐이다. 콜럼부스가 처음 점령하여 총독을 했던 히스패니올라섬(현 도미니카/하이티)에서는 그가 식민지를 건설한 지(1494년) 2년 내에 섬주민 25만명의 반이 죽었고 1517년 14,000명으로 줄었다. 캐리브해의 섬들에서 인디언들이 거의 절멸되었다. 인디언들이 급속하게 죽자 1501년부터 흑인노예를 데려오기 시작했다. 1500년경 2500만명이었던 아즈텍 인디언 인구는 1600년에 100만명 정도로 감소되었고 1530년경 1200만명이었던 잉카 인구도 100년후 60만 정도로 감소되었다. 1500년 1500만명 정도로 추측되던 북미 인디언은 1900년에는 23만7천명(인구 센서스에 나타난 기록)으로 축소되어 북미인디언들도 거의 절멸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북미에서 영국이나 미국의 인디언 정책은 거의 절멸정책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항하는 자는 학살하거나 실제 수많은 부족들이 절멸당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다고 하지만 서구인의 인디언 학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주대륙에서는 수많은 종족(족 또는 부족)이 멸종당했다. 전체적으로 5000만명 이상의 인디언들이 백인들에 의한 학살, 학대, 기아, 질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 ‘반면 그들(=인디언)을 억압하는 이들(=백인들)을 보라. 역겹고 흉악한 얼굴들, 음험하고 잔인한 입술, 음탕한 입과 육욕에 가득 찬 튀어나온 눈. 선행이 불가능한 인간들이다.’ 회사의 대리인들은 육체노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 한줌의 살인자들이 문명의 이름으로, 그리고 영국 신사들과의 대단한 친분으로 위장하고서,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하게 타고난 착한 사람들(=인디언)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월터 하든버그가 찍은 가슴 아픈 사진. (아마존의) 위토토족 여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 당시 서구인들은 원주민들을 흔히 무능하고 게으른 인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고무 붐 시기 많은 원주민들이 마체테에 난자당했다. 마체테는 넓고 무겁고 날이 하나인 검보다 짧은 무기로 아마존 밀림을 탐험하기 위한 필수품 중 하나이다. 서구인이 최초로 도래한 시기부터 수풀을 헤쳐나가는 용도로 애용되었다. 고무를 충분히 갖고 오지 않은 인디오들이 ‘총에 맞거나 마체테로 손발이 잘린 후 집 밖으로 내던져지는 것’을 목격했다. =========== (서양 마녀사냥 시기의 그림들) 구글링으로 찾아보니....백인들의 원주민 학살 사진들이 생각보다 별로 없네요. 어느 블로거가 말하더군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터넷 상에서 백인들의 원주민 학살 사진들이 대부분 사라져버렸다고.... 그리고 백인들이 그린 인디언 학살 사진들에 인디언들이 이상하게도 서양인 모습의 얼굴로 나오는군요. 그건 유대인의 얼굴 모습이라고 하네요. 아래 동영상 강좌에 의하면..... 북남미 인디언들은 결국 우리 한민족의 일파였다는데.... 그 말은 결국......우리 한민족을 몰살시키고, 무수히 학살한 것이 서양 백인놈들이라는 말로서....서양 백인놈들은 우리 한민족의 철천지 웬수들이라는 의미이지요. 중남미 마야문명, 아즈텍문명, 잉카문명을 건설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뿌리를 밝힌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은 북쪽 알래스카 원주민으로부터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 중남미의 원주민으로 문명사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도 이동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아메리카의 마야문명과 아즈텍문명, 그리고 남미 잉카문명을 이루어낸 원주민이 한민족의 후예라는 사실. 마야문명의 마야어족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작은 부족으로서, 이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기원전(BC) 3000년대 중반에 멕시코와 서부 과테말라 고지에 정착한 것이라 한다 고대 멕시코 및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번성한 인디오 문명 및 이를 이룩한 민족이 바로 한민족이다. 북방 민족 중 가장 늦게 이주한 종족으로 13~15세기경에 멕시코 중앙고원에서 인디언에 의해 꽃피워 졌던 마지막 고대 문명이 바로 아즈텍 문명이다. STB 특별기획 역사특강 " 우리 한韓민족의 대이동 " (배재대학교 스페인어학과 손성태 교수) 한민족의 대이동 -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민족의 언어적 증거 목차 1. 서론 2. 시대적 배경 3. 언어적 비교 분석 3-1. 나와들어에 나타나는 우리말 고어 3-2 나와들어에 나타나는 현재의 우리말 4. 아리랑 5. 아사달 Aztlan 6. 결론 STB 특별기획 역사특강 " 우리 한韓민족의 대이동 " 세계 최초 방송공개 - 아메리카 원주민의 뿌리를 밝힌다. 손성태 교수(대전 배재대 스페인어학과)가 <우리 한민족의 대이동> 3강을 통해 한韓민족사의 미싱링크(Missing Link)인, 잃어버린 부여사의 일단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한韓민족임을 밝힌다. 멕시코 80% 인구는 원주민 피가 흐른다. 중남미 인구 전체는 원주민 피이거나 혼혈이다. 지금은 원주민 대통령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몸속 피, 조상이 누구인가?”이다. 손성태 교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 풍속, 지명 외 여러 고문서와 유물을 통해 아즈테카 문명을 건설한 멕시코 원주민은 바로 우리의 선조임을 충격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뿌리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면 우리는 형제국이 될 수밖에 없다. 한민족은 환태평양을 이끌어갈 지도국이 될 수 있다. 설레는 맘으로 그 역사의 현장 속으로 가보자. 1강 멕시코와 우리 한민족의 공통점 고구려 멸망(668년) 때부터 발해 멸망(926년) 때까지 우리 민족이 베링해 알류샨열도를 넘어 아메리카로 대규모로, 여러 번에 걸쳐, 이동해 갔다. 민족의 이동을 파도의 이동에 비유한다, 거세지다가 잦아질 때도 오랜 시간 걸린다. 우리 민족의 대이동은, 북쪽으로 휘몰아쳐 가는 파도였다. 흉노, 선비, 거란, 금나라, 몽골, 만주족 등 동북아 모든 민족은 중원을 향해 남진했다. 왜 우리 민족은 북상했는가? 이미 그 이전부터 알고 있던 길이었음이 분명하다. <IFRAME height=225 src="http://www.youtube.com/embed/4BXYumxUyGI" frameBorder="" width=300 allowfullscreen></IFRAME> 2강 만주에서 춥지 반도까지의 이동증거 우리 민족이 북상했던 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여실한 증거를 많이 남겼다. 동북아 대륙을 북상하면서 남긴 흔적이 증명되면, 캐나다 서해안을 따라 아메리카를 남하하면서 증명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우리의 말, 온돌을 비롯한 한민족 고유의 유물, 태양신 신앙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IFRAME height=225 src="http://www.youtube.com/embed/o3LvP2mlokA" frameBorder="" width=300 allowfullscreen></IFRAME> 3강 멕시코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흔적 기원 전후 1000년 중에서도 기원후 3-8세기 고구려 멸망 후 발해까지 가장 많은 이동이 있었다. 먼저 앞서 들어간 고리족이 있었고, 826년에 넘어간 사람들이 힘을 합해 멕시코 아스테카 제국을 건설했다. 언어, 상투와 비녀 등의 의복, 윷놀이와 격구 등의 놀이와 관혼상제 풍습까지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우리 민족과 놀랍도록 일치하고 있다. 손교수는 “직접적인 관련 없이 이처럼 공통점이 많기는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IFRAME height=225 src="http://www.youtube.com/embed/wD9uNBRLYUo" frameBorder="" width=300 allowfullscreen></IFRAME> STB 특별기획 역사특강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1편 1장) 단절된 역사, 말살된 민족혼!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처럼 우리 역사는 실로 ‘무정신의 역사’다. 고고학적 발굴로 고대사에 대한 일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한민족 역사와 문화의 근본적인 복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을유(1945)년, 일제가 원폭으로 패망하여 물러간 뒤에도 그들이 남긴 식민사학은 조선 땅에 그대로 남아 뿌리내렸고, 그 깊은 병독이 아직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식민사관에 물들어 한민족 고유의 정신세계, 역사관(신교문화)에 대한 기본 인식이 결여된 역사학자들이 오로지 실증적이고 유물론적인 연구태도만을 고집하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신성문명의 황금시대였던 태고의 시원문화와 역사의 실체를 송두리째 상실한 한민족!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신교神敎와 상제문화’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신교는 한민족 혼의 고향인 동시에 인류문화의 모태였다. 어떤 종교를 신앙하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자기 존재의 근본인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시원, 그리고 그들이 어떤 정신세계에서 살다 갔는가 하는 민족의 정통성을 명백하게 알아야만 한다. 그것이 자기 존재의 본질을 알고,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선결해야 할 요건이다. 이제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인류 역사의 정의를 총체적으로 바로 잡아 그 원형을 되찾고 민족의 국통을 바로 세우기 위해 STB 상생방송국에서 그 첫걸음을 내딪고자 한다. 다가오는 2009년 기축년 새해에 방영될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STB초청 역사특강은 각계의 지식인들을 초청해 우리의 뿌리 역사에서부터 왜곡된 기존의 한민족사를 바로잡아 시원사의 국통을 밝히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과 사명을 일깨워 줄 역사 강좌를 마련하고자 한다. 출처: 사단법인 한국국유부동산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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