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브래지어
역사 이래 자비로운 모성의 상징이었던 여성의 가슴은 시대와 나라,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풍속에 따라 갖가지 야사(野史)를 남기면서도
여전히 신성(神性)과 관능(官能)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전설적인 미녀 클레오파트라가 옥타비아누스의 노여움을 사서
악티움 해전에서 패한 뒤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자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사에게 물린 부위가
그녀의 미모만큼 여러 남성을 사로잡았던 가슴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의 경우 외형상 왼쪽 가슴 부위가 심장부위와 다르지 않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이러니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기원전 79년 화산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의 벽화를 보면
여인들이 얇은 띠를 가슴에 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브래지어라고 볼 수 있는 이 얇은 띠는 가슴을 가리기보다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이 더 컸습니다.
벌거벗은 윗몸에 가슴에만 살짝 포인트를 줌으로써
성적 매력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브래지어가 없었습니다.
아예 가슴을 드러내놓고 생활하거나 청교도들처럼 가슴이 큰 것을
수치로 생각해 납작하게 조이는 '보디스(Bodice)'를 입기도 했습니다.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받아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양귀비는 임금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동안에도
잠시 어떤 장군과 불꽃같은 사랑 놀음을 벌였는데
그만 그 장군이 너무 열정에 겨워 그녀의 가슴에 멍을 들여놓고 말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저녁 임금앞에 나아가야할 그녀는 고심 끝에
이 사련(邪戀)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붉은 비단 천으로 가슴 띠를 둘렀는데
이것이 또한 별나게 황제를 황홀하게 하였기에 그
후에도 계속 가슴 띠를 둘렀으며 이것이 궁중패션으로,
또한 여염의 속옷패션으로 계속 번져나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민족사만큼이나 눈물겨운 유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초에 여진족을 몰아내고 육진을 수복해 놓고 보니
그 지역을 지키고 살 백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가슴이 큰 여자가 다산을 한다는 세속(世俗)이 지배적이어서
가슴 큰 여자를 차출, 육진지방에 강제 이주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 소문을 들은 여염의 여자들은 너도 나도 가슴을 작게 보이게 하기 위해
헝겊으로 가슴을 졸라매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뒷날 치마와 합쳐져 치맛말이 됐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이 착용하는 브래지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당시의 사교계의 스타 메리 제이콥스(Mary Pelps Jacobs)로
1913년 어느 날 그녀는 깜짝 놀랠만한 드레스를 발견했습니다.
매우 얇고 가벼워서 춤을 추기엔 안성맞춤이었고 턴을 돌면
치맛자락이 마치 부채처럼 펼쳐지는 그런 드레스였습니다.
하지만 상체 부분이 비치기 때문에 도저히 코르셋을 착용할 수 가 없었습니다.
종아리를 드러내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당시에 차마 가슴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녀는 고민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끌 수 있는 시스루 드레스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슴을 노출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슬픔이 치밀어 올랐던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려던 찰나,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손수건 두 장을 가지런히 놓고 마주 닿는 부분을
실로 꿰메었습니다. 가슴에 대보니 딱 알맞은 사이즈였으며,
이렇게 이걸 고정할까 고민하던 그녀는
드레스의 허리를 감싸던 분홍색 끈 세장을 가져왔습니다.
두장의 끈을 양 어깨위로 두르고 가슴 아래에 나머지 하나를 두르니
사이즈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환희에 찬 그녀는 그렇게 손수건 두 장과 분홍색 끈 세장으로
최초의 현대적인 브래지어를 완성했습니다.
자랑스럽게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에 도착했던 메리.
그녀를 본 수 많은 여성들은 감탄사를 내질렀고
그녀는 1914년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지연코스메틱 #역사속의브래지어 #브래지어의유래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풍속에 따라 갖가지 야사(野史)를 남기면서도
여전히 신성(神性)과 관능(官能)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전설적인 미녀 클레오파트라가 옥타비아누스의 노여움을 사서
악티움 해전에서 패한 뒤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자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사에게 물린 부위가
그녀의 미모만큼 여러 남성을 사로잡았던 가슴이었다는 사실은
여성의 경우 외형상 왼쪽 가슴 부위가 심장부위와 다르지 않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이러니를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기원전 79년 화산 폭발로 멸망한 폼페이의 벽화를 보면
여인들이 얇은 띠를 가슴에 두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브래지어라고 볼 수 있는 이 얇은 띠는 가슴을 가리기보다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목적이 더 컸습니다.
벌거벗은 윗몸에 가슴에만 살짝 포인트를 줌으로써
성적 매력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브래지어가 없었습니다.
아예 가슴을 드러내놓고 생활하거나 청교도들처럼 가슴이 큰 것을
수치로 생각해 납작하게 조이는 '보디스(Bodice)'를 입기도 했습니다.
당나라 현종의 총애를 받아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지는 양귀비는 임금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동안에도
잠시 어떤 장군과 불꽃같은 사랑 놀음을 벌였는데
그만 그 장군이 너무 열정에 겨워 그녀의 가슴에 멍을 들여놓고 말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저녁 임금앞에 나아가야할 그녀는 고심 끝에
이 사련(邪戀)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붉은 비단 천으로 가슴 띠를 둘렀는데
이것이 또한 별나게 황제를 황홀하게 하였기에 그
후에도 계속 가슴 띠를 둘렀으며 이것이 궁중패션으로,
또한 여염의 속옷패션으로 계속 번져나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민족사만큼이나 눈물겨운 유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초에 여진족을 몰아내고 육진을 수복해 놓고 보니
그 지역을 지키고 살 백성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가슴이 큰 여자가 다산을 한다는 세속(世俗)이 지배적이어서
가슴 큰 여자를 차출, 육진지방에 강제 이주시킨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 소문을 들은 여염의 여자들은 너도 나도 가슴을 작게 보이게 하기 위해
헝겊으로 가슴을 졸라매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뒷날 치마와 합쳐져 치맛말이 됐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이 착용하는 브래지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당시의 사교계의 스타 메리 제이콥스(Mary Pelps Jacobs)로
1913년 어느 날 그녀는 깜짝 놀랠만한 드레스를 발견했습니다.
매우 얇고 가벼워서 춤을 추기엔 안성맞춤이었고 턴을 돌면
치맛자락이 마치 부채처럼 펼쳐지는 그런 드레스였습니다.
하지만 상체 부분이 비치기 때문에 도저히 코르셋을 착용할 수 가 없었습니다.
종아리를 드러내는 것조차 금기시했던 당시에 차마 가슴을 드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녀는 고민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끌 수 있는 시스루 드레스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슴을 노출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슬픔이 치밀어 올랐던 그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려던 찰나,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손수건 두 장을 가지런히 놓고 마주 닿는 부분을
실로 꿰메었습니다. 가슴에 대보니 딱 알맞은 사이즈였으며,
이렇게 이걸 고정할까 고민하던 그녀는
드레스의 허리를 감싸던 분홍색 끈 세장을 가져왔습니다.
두장의 끈을 양 어깨위로 두르고 가슴 아래에 나머지 하나를 두르니
사이즈가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환희에 찬 그녀는 그렇게 손수건 두 장과 분홍색 끈 세장으로
최초의 현대적인 브래지어를 완성했습니다.
자랑스럽게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에 도착했던 메리.
그녀를 본 수 많은 여성들은 감탄사를 내질렀고
그녀는 1914년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지연코스메틱 #역사속의브래지어 #브래지어의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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